세 여자와 아름다운 동행
[아빠의 여덟번째 이야기] 만덕장군과 박씨 이야기 본문

옛날 아주 옛날
우리나라에 일본 왜군이 쳐들어 온 적이 있어.
그 때를 사람들은 임진왜란이라고 불렀고
그 때 우리나라를 사람들은 조선이라고 불렀지.
바다를 통해 쳐들어 온 왜군들은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을 향해 위로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어.
수많은 병사들과 백성들의 생명을 빼앗으며 말이야.
왜군이 갑자기 쳐들어 오자 전쟁을 생각지 못했던 백성과 병사들은
지키는 성을 버린채 도망가거나 쉽게 빼앗기고 뿔뿔이 흩어지기 십상이었지.
그 어디라더라?
만덕산 만덕장군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왜군이 온다는 소식은 저 깊은 만덕산에도 전해졌어.
그 소리에 만덕성을 지키던 병사들도 다를 바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하며 성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지.
그러니 그런 병사들을 보며 왜군들이 얼마나 깔깔대며 비웃었겠어.
왜군들은 미리 쳐들어 간다는 소문을 내고
이번에도 요란스레 징과 꽹과리를 치며 만덕산 기슭 만덕성을 쳐들어갔지.
역시나 성문은 활짝 열려 있고 성문을 지켜야 하는 병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라는 거야.
“하하하. 그럼 그렇지. 우리들이 무서워 모두 다 도망갔구나.”
왜군들은 어려움 없이 성을 빼앗았구나 하는 생각에 의기양양하며 성문을 들어갔어.
위풍당당 들어가는데 어디선가 ‘드르렁!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나는거야.
어찌나 코고는 소리가 크던지 마치 번개치는 날 천둥소리 같았지.
그 주인공은 바로 만덕성을 지키는 만덕장군이었지.
넓은 평상 위에 덩치가 삼척이 넘는 장군이 떡 하니 누워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고 있으니 참으로 볼만했지.
뭐 자고 있으니 왜군들은 이때다 싶어 창과 칼로 장군을 서둘러 제압하려 했어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생겨났지
왜군들의 칼과 창이 장군의 몸에 닿자마자 칼과 창을 든 병사들마저 10리 밖으로 날아가 버렸지 뭐야.
이것을 본 다른 병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어.
온 힘을 다해 공격한 발바닥에 창이 닿자마자 멀리 튕겨 나가버렸지.
10리 밖까지 날아가 버렸지 뭐야.
10리 밖으로 날아가고 겨우 돌아온 왜군들은 지칠대로 지쳤지만
장군에 대한 총공격을 멈추지 않았어.
혹시 약점이 콧구멍일까 하고 콧구멍을 공격해 보면
그 때마다 창과 함께 10리 밖으로 날아가고..
귓구멍일까 하고 귓구멍을 공격하면
그 때마다 또 10리 밖으로 날아가고...
정말 어이없는 광경이 펼쳐졌어.
생각해 봐. 정말 놀랍지 않아?
만덕산 만덕장군은 그저 낮잠만 자고만 있는데
왜군들만 하루에 몇 번씩 공격하고 10리 밖으로 날아가고
다시 만덕산에 기어올라 또 공격하고 10리 밖으로 날아가고...
그날도
그 다음 날도
만덕장군은 아는 지 모르는지
드르렁 드르렁 잠만 자고 있었지.
패잔병이 된 왜군들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모여 작전을 짰어.
도저히 만덕장군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거든.
그런데 누군가가 말을 했어.
만덕장군과 친한 마을사람을 찾아다가 만덕장군의 비밀을 알아내자고 말이야.
일리가 있는 말이거든.
왜군들은 마을로 내려가 만덕장군과 친한 마을사람을 찾기 시작했어.
만덕장군은 원래 만덕산 제일봉에서 혼자 성을 지키는 터라
마을 사람들과 친한 사람을 찾는게 쉽지는 않았어.
그래도 딱 한 명이 있었던 거야.
마을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박씨라는 사람이었어
원래 박씨는 심성이 곱고 부지런해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만덕산까지 가서 나무를 하곤 했지.
나무를 판 돈으로 홀어머니를 모시던 효심 깊은 나뭇꾼으로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했어.
좀처럼 곁을 주지 않던 만덕장군마저
그런 박씨에게는 마음을 주었던 것인지
박씨의 그런 부지런함과 효심에 반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여튼 장군과 유일하게 말을 주고 받는 사람은 박씨 밖에 없었다지. 아마.
왜군들은 당장 그 박씨를 찾으러 마을로 내려갔지.
뿔이 날대로 난 왜군들은 박씨의 홀어머니를 겁박하며
만덕장군의 약점을 캐어오라고 윽박질렀어.
홀어머니 걱정에 어쩔 도리가 없던 박씨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만덕산에 올라갔어.
만덕장군의 약점을 캐기 위해 말이야.
마을을 지켜주는 만덕장군에게 마을 사람들이 주는 선물이라며
술과 음식을 함께 가지고 가서 전해 주었지.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장군에게 박씨가 넌지시 물었어.
“장군은 어떻게 창도, 칼도 들어가지 않는 천하무적의 몸을 가지게 되었소? 라고 말이야.
“나는 원래 옥황상제를 모시는 하늘나라 신하인데 옥황상제의 뜻을 받들어 이곳 만덕산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네. 그러니 그 어떤 무기도 내게 통하지 않지.”
그 말을 들은 박씨는 얼른 마을로 내려가 왜군에게 그 비밀을 말했어.
그랬더니 도리어 더 겁을 주며 박씨를 다그쳤어.
“약점은 반드시 있을 것이니 어서 약점을 더 캐오거라.”
두 눈을 부릅뜨는 왜군에게 하는 수 없이 박씨는 어쩔 도리가 없었어.
이번에도 술과 음식을 등에 짊어지고 만덕산에 올랐지.
아는지 모르는지 잠만 드르렁 골던 장군은
박씨가 오자 반갑게 맞아주며 마을에서 가져온 술과 음식을 맛있게 먹었어.
”그럼 만덕장군은 정말 약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인가요?“
그랬더니 하하하 웃으며 박씨를 믿는 장군이 말을 하는거야.
”사실 약점이 하나 있긴 한데 다른 사람들은 절대 찾지 못하는 약점이야. 찾는다고 해도 내가 깨어있는 한 절대 그 약점을 잡아 뽑을 수 없어.“ 라고 말이야.
마을로 돌아온 박씨는 왜군에게 이 비밀을 알려주었어.
그랬더니 도리어 왜군들은 술과 음식을 더 가져가서 얼른 그 약점을 찾아 뽑으라고 명령했지.
사실 왜군들은 만덕장군의 장사같은 힘과 강철몸에 겁을 먹고 덜덜 떨고 있었거든.
박씨도 내심 내키지 않았지만 홀어머니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어.
박씨는 다시 준비해 둔 술과 음식을 들고 만덕장군을 만나러 가게 되었지.
다른 꿍꿍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만덕장군은 오늘도 박씨를 기뻐하며 맞이해 주었지.
거기다가 횡재를 했다며 술과 음식을 한 상 먹고는 드르렁 드르렁 골아 떨어져 버렸어.
흔들어도 일어나지 못하는 만덕장군에게 조용히 물어봤어.
”장군님. 그래서 그 약점은 어디 있는건데요. 얼굴에 있나요?“
”아니”
신기하게도 장군은 자면서도 계속 잠꼬대로 대화를 하는거야.
“그럼 약점이 배에 있나요?”
“그럼 약점이 다리에 있나요?”
“아니”
잠꼬대를 하며 웃는 장군이 자기도 모르게 말을 이으며 그만 비밀을 말해 버렸어.
“헤헤, 나한테는 남한테 없는 게 하나 있어. 옥황상제께서 나를 내려보내실 때 주신 용의 비늘이 겨드랑이에 하나 박혀 있지. 그 비늘이 나의 힘과 강철 몸의 비밀이야.”
그 말을 들은 박씨는 조심스레 장군의 겨드랑이를 살펴보았어.
정말이지 큼직한 용의 비늘 하나가 반짝이는 게 아니겠어.
박씨는 장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겨드랑이에 있는 용의 비늘을 힘껏 뽑아 들고 마을로 달려갔어.
제 시간에 오지 않으면 자신의 홀어머니가 괴롭힘당할 게 뻔했거든.
마을에 도착한 박씨는 눈물을 흘리며 왜군에게 사정했어.
“이제 제 어머니를 풀어주세요. 제가 장군 겨드랑이에 있는 용의 비늘을 모두 뽑았으니 이제 장군은 힘도 빠지고 강철의 몸도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왜군들은 반색하며 박씨와 그의 어머니를 풀어주고 만덕장군을 잡으러 갔어.
요란스레 징과 꽹과리를 치며 말이야.
왜군들이 모두 떠난 뒤 박씨는 어머니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시킨 후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어.
평생 친구를 배신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지.
그런 아들을 보며 박씨의 어머니는 어여 만덕장군님께 돌아가 비늘을 돌려주라고 하셨지.
‘그래. 아직 비늘은 사라지지 않았어. ’
박씨는 꼭 쥐고 있던 손을 펴고 용의 비늘을 확인했어.
‘서둘러 장군에게 돌려줘야 해.’
박씨는 자신 때문에 장군이 고통을 당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어.
한편 징과 꽹과리 소리에 잠에서 깬 만덕장군은 겨드랑이 비늘이 뽑혀 사라졌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지. 힘도 빠지고 더 이상 강철 몸이 아닌 장군은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
곧 왜군들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되었지.
그런데도 만덕장군은 박씨를 원망하지 않았어.
진정 친구라 여겼던 만덕장군은 박씨에게 어쩔수 없었던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오히려 박씨 걱정을 했지.
다음 날이 밝았어.
날이 밝은 대로 만덕장군을 재판하기로 되어 있었거든.
마을은 마을 사람들과 왜군들로 시끌벅적 소란스러웠지.
방금 옥에서 끌려나온 장군에게 왜군들이 창과 칼을 휘둘기 시작했으니 더욱 소란스러웠지.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생겼어.
갑자기 왜군들이 다시 10밖으로 날아가기 시작한거야.
맞아.
만덕장군의 겨드랑이에는 다시 용의 비늘이 박혀 있었던 거야.
장군은 묶였던 사슬을 끊고 왜군들을 모두 날려 보냈지.
왜군들이 놀라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왜군들이 10리 밖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어.
남은 왜군들은 쫒겨서 만덕산 꼭대기로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지.
만덕장군은 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왜군을 몰라 만덕산 제일봉까지 쫓아갔지.
이제 곧 만덕장군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이 왔어.
만덕산 꼭대기 끝에는 더 이상 도망갈 수도 없는 낭떠러지거든.
만덕장군은 처음부터 그것을 노리고 왜군들을 만덕산 꼭대기로 내몰았던 거야.
왜군들의 한 발자국 남짓 뒤에는 한치앞도 헤아릴 수 없는 낭떠러지가 펼쳐졌지.
낭떠러지까지 몰릴 때까지 몰린 왜군들은 갑자기 왜군 한 명의 전투 투구를 벗기며 소리쳤어.
“여기 이자를 잘 봐라. 너의 친구 박씨다. 우리의 목숨을 살려주면 이 자를 놓아주겠다.”
왜군들은 박씨를 풀어주는 대신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요구해 왔어.
투구를 벗은 자리에는 마을에 숨어 있었던 박씨가 서 있었어.
처음부터 왜구는 박씨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거야. 그래서 만덕장군과 함께 재판을 해서 없애려고 했던거지.
“아... 자네가 왜 여기에 있나?”
“죄송합니다. 장군님.”
“제가 또 장군님의 짐이 되어 버렸군요.”
박씨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지.
”장군님 제 목숨은 걱정하지 마시고 부디 우리나라를 짓밟은 이 왜구들을
이 땅에서 모두 몰아내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구만리 낭떠러지 길에 발을 내딛었어.
박씨의 마음색을 닮은 꽃들도 분홍빛 흩날리며 박씨의 가는 길을 함께 했다고 해.
이를 본 만덕장군은 흐르는 눈물마저 꾹 참고 왜구들을 모두 몰아내었지.
박씨의 소원대로 이 땅에서 모조리 말이야.
그 후로 왜구들은 만덕장군에게 혼쭐이 나서 그런지 우리나라는 얼씬 못했다고 해.
만덕장군은 그 후로 만덕산 산신이 되었고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지. 아마.
박씨는 무엇이 되었을까?
지금도 만덕산 제일봉 꼭대기에 가보면
나뭇꾼의 지게를 닮은 진달래 나무가 산 정상에 올 곧이 서 있다고 해.
서로를 믿고 끝까지 옳은 일을 행한 만덕장군과 박씨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금까지도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해년마다 피고 지고 한다고 해.
마치 매년 봄이 되면 은은한 향과 분홍 자태를 뽐내는 진달래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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