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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세번째 이야기] 칡꽃이 피니 다른 친구가 생겼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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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세번째 이야기] 칡꽃이 피니 다른 친구가 생겼다.

생각이 날다 2023. 8. 16. 15:38

학교가는 길, 박주가리 꽃

 그 일이 있고 난 후 양식이가 학교를 쭉 잘 나오기는 했지만 감기라도 걸려 많이 아픈 날에는 여러 날을 나오지 않았다.

양식이가 아파서 걱정이 되었지만 양훈이는 섣불리 문병을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양훈이에게 양식이 집까지 거리 2km는 너무 벅차고 먼 거리였기 때문이다.

 

양식이가 오지 않는 날엔 양훈이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양훈이는 문득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씀 중 마음은 불편해도 몸은 편하다. “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양식이가 오지 않는 날이면 양훈이는 늘 혼자였다.

같은 마을 친구 하나 없고 다른 마을에 딱히 아는 친구도 없었다.

 

오늘도 양식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양훈이는 고만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어 있곤 했다.

교실 책상에 앉아 얼마 전 양식이와 했던 지우개 싸움을 떠올리며 양훈이는 양식이 몫까지 혼자 지우개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양훈이는 혼자 지우개 싸움을 하고 있는데 운산리에 사는 상영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양훈이지? 너 위 끝동네에 산다며? 너 양식이랑 친하지?”

. 양식이는 오늘 아파서 못 왔어.”

 

학교를 기준으로 양식이와 양훈이가 살고 있는 용대리와 청운동은 윗동네, 창평에 가깝고 반 친구들이 살고 있는 상갈리, 갈전리, 운산리, 송산리는 아랫동네에 해당된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양훈이와 양식이는 창평중에 가게 되고 화순 경계에 있는 아랫동네 아이들은 화순 북면중에 간다고 한다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아랫동네 아이들은 윗동네인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양훈이와 양식이는 처음부터 함께 가야 하는 공동운명인가 보다.

 

아랫동네에서 상영이는 아이들에게 꽤 신망이 두터운 거 같았다왜냐하면 아랫동네 아이들은 공부하거나 놀 때에도 항상 상영이의 주변에서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거나 주위를 맴돌았다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상영이가 힘이 세거나 싸움을 잘해서 아이들이 그 주변을 맴도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여러 날을 자세히 보고 있자니 상영이는 이곳 깡촌의 아이들과는 다른 뭔가 남다른 면이 있었다평소 말이 차분하고 남을 잘 배려하며 친구가 어려운 상황일 때에는 몸소 나서서 친구를 도왔다학급 봉사활동도 자원하여 주도하거나 다른 친구들을 설득하여 함께 하는 등 다른 아이들을 이끌었다. 그런 상영이를 아이들도 잘 따랐다.

 

그렇다.

요사이 살펴본 바로 상영이는 또래 아이들의 진정한 리더였다.

그래서인지 친구들 간 서로 다툼이 있어도 상영이를 보면 싸움을 멈추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 모습을 몇 번 본 거 같다. 그것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몰라도 선생님도 상영이를 크게 신뢰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상영이가 팔자걸음을 하고 성큼성큼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 준 것이다.

양훈이는 속으로 기쁜 마음까지 들었다.

큰 덩치에 얼굴은 동글고 코는 오똑한 데 쌍꺼풀이 깊고 눈썹이 진한 게 소처럼 우직하고 듬직해 보였다.

 

너 양식이 땜에 일부터 같이 걸어간다며. ”

딱히 뭐라 답변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으응.” 

너 되게 착하다. 너 오늘 우리 집 갈래? 송산리에 사는 범식이도 갈 거야.”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반 리더이자 아랫동네 엄석대인 상영이가 친구하자더니 심지어 자기 집에 놀러 오라는 것이다.

 

광주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5시에 갈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전까지 시간은 많다.

 

양훈이와 상영이와 범식이는 서둘러 점심을 먹고 상영이 집인 운산리로 향하였다. 운산리로 가는 길은 학교 근처 마을인 상갈에서 갈전을 지나야 한다.

 

셋은 어깨동무를 하며 시골길을 걸어갔다.

길 한복판을 어깨동무하며 지나가도 차 한 대가 지나가지 않은 평온한 하굣길이었다.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양훈이는 무척 불편했지만 왼쪽 가에서 상영이의 허리춤을 잡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콧노래가 절로 났다.

푸릇푸릇한 청 보리밭이 한 번씩 바람에 스러졌다 일어났다.

이 광경에 아이들은 소리쳤다.

 

이야. 파도다.”

아이들은 넘실 넘실대는 보리밭을 보며 푸른 바다를 보고 있었다.

 

우리 나중에 좀 더 크면 꼭 바다에 놀러 가자.”

거창하지 않지는 않지만 셋은 새끼손가락을 걸며 진지한 결의를 하였다.

 

상영이 집에 도착한 셋은 가방을 내팽개치고 놀잇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상영이 아버지와 어머니도 집에 계시지 않았다.

3학년 상영이 누나는 멀리서도 상영이 누나인 줄 알 정도로 상영이와 비슷하게 생겼다.

눈이 크고 쌍꺼풀이 있어서 예뻐 보였다.

누나는 옆집 단짝 재은이 집에 놀러 간다며 급하게 사라졌다.

 

낚시나 할까?’ 범식이가 말했다.

상영이 집에 자주 놀러 오는 범식이는 저번에도 마을 냇가에서 송사리 낚시를 했던 것이 분명하다.

 

찾았다.”

얕은 미소를 띄우며 상영이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곡괭이와 삽 그리고 낫을 챙겨 대문을 나섰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나서는 양훈이와 범식이는 상영이의 뒤통수를 쫓아갔다.

상영이 집에서 나오면 바로 왼쪽으로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루는 산이 있다.

상영이는 앞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칡을 캐서 먹어보자.”

딱히 할 일도 없던 터이지만 한 번도 칡을 캐 본 적 없던 양훈이와 범식이는 잠시 망설였다.

걱정하지마. 내가 겨울에 형하고 아빠하고 캐 본 적이 있어.”

엄청 가파른 거 같지만 막상 올라갈 만하고 흙이 마사토라 쉽게 팔 수 있어.

칡도 깊게 박히지 않고 옆으로 자라서 잘만한 하면 우리가 힘을 합해서 바로바로 칡을 뽑을 수 있어.”

 

마사토는 물이 잘 빠지고 흙이 모래처럼 부서지기 때문에 부드럽고 잘 파지는 특징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는 동안 서산 해가 조금씩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산 중턱을 올라간 우리들은 자줏빛 칡덩굴 군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자리 하나를 골라 칡 대를 잡아챘다.

마사토의 부드러운 흙 사이로 굵은 칡 머리가 조금 올라왔다.

상영이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잔가지를 낫으로 정리한 후 괭이로 파기 시작했다.

양훈이와 범식이도 상영이를 도와 땅을 부지런히 팠다.

 

힘이 세지 않은 양훈이의 괭이도 쑥쑥 들어갔다.

비가 오면 질퍽거리는 마당에 물이 잘 빠지고 모래처럼 보드라운 마사토 흙을 파서 자기 집 마당에 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땅을 파고 상영이는 칡 머리를 잡아서 채기 시작했다.

끄응 소리를 내며 가을철 무 뽑듯 힘껏 잡아채는 상영이를 멍하니 보다 이내 범식이와 양훈이도 합세해서 뽑기 시작했다.

 

하나 둘 으싸! 하나 둘 으싸!”

이 모습을 보지 않고 구령 소리만 들었다면 아마 가을철 줄다리기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이내 어른 팔뚝보다 훨씬 큰 칡이 코르크 마개 열 때 나는 소리처럼 뽁하며 뽑혀졌다.

꼭 그렇게 들리는 것 같았다.

 

, 크다!”

우리들은 뭔가 대단했다는 것을 해냈다는 듯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환하게 만세를 외치며 웃었다.

 

칡은 톱으로 쉽게 잘 썰어졌다. 역시나 전에도 칡을 캐 보았다는 상영이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어른 검지 뼈 한마디 크기로 자른 칡을 우리는 나누어 먹었다.

칡은 약간 쓴 맛을 내더니 그새 달디 단 맛으로 변했다.

 

칡을 이렇게 많이 먹어본 적도 없었다.

계속 씹다 보면 꼭 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은 박칡인지 밥칡인지 모르겠다며 또 웃었다.

내가 이렇게 아랫동네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논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상영이 집에서 장기를 두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셋 다 비슷비슷 장기를 잘 두었지만 양훈이가 그 중 장기를 제일 잘 두었다.

내기장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 장기 두실 때마다 오가며 익혀 둔 실력이 발휘된 거라 양훈이는 생각했다.

 

5시가 되면 갈전에서 광주로 떠나는 버스가 출발을 한다.

상영이와 범식이는 아쉬움을 달래며 양훈이를 갈전까지 데려다 주었다.

가는 길은 15분정도 걸어야 도착하는 거리였지만 양훈이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늘은 친구 2명이 더 생긴 날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랫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친구들과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는 것이 양훈이를 콧노래 부르게 하였다.

고단한 양훈이는 이른 저녁을 먹고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믿기 힘든 이야기를 목에 힘을 주어가며 들려주었다.

초등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양훈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치우시며 양훈이를 일찍 눕혔다.

 

피곤했는지 양중이는 그새 코를 골며 꿈나라로 날아갔다.

 

새벽에 양훈이는 온 몸이 고열이 펄펄 끓었다.

아마 오후에 캐서 먹은 칡이 문제인 것 같았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칡에 꽃이 피면 독성이 올라와서 먹으면 안되는데 애들이 몰랐나 보다 하시며  꽃이 핀 칡 때문이라며 혀를 차셨다. 

어머니는 밤새 수건에 물을 묻혀 고열과 식은 땀으로 힘들어하는 아들을 닦으시며 밤새 간호를 하셨다.

어머니 덕분인지 동틀 무렵엔 어느 정도 양훈이의 열이 내린 후였다.

 

안돼. 오늘 학교에 가지 말고 집에서 쉬거라. 학교에는 내가 연락을 하마.”

학교에 가려고 가방을 챙기는 양훈이를 잡으시며 어머니는 오늘 쉴 것을 권하셨다.

 

“싫어. 엄마.  셋 다 칡을 먹었는데 나만 안 가면 친구들이 내가 제일 약하다고 할 게 틀림없어.”

양훈이는 아직 내리지 않은 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에 가려고 했다.

잠자코 듣고 만 계시던 아버지가 언성을 높이시며 학교가지 말고 쉬라고 불호령을 내리셨다.

양훈이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아이들에게 학교에 안 나온 이유를 내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칡 먹고 아팠다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상영이와 범식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냥 외갓집에 갔다 왔다고 할까? ’

 

여러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양중이는 그냥 사실대로 얘기하기로 했다.

뭐 약하다고 나랑 같이 놀지 않는다고 해도 어떨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열심히 노력하고 잘 할 수 있도록 해 보면 될테니까.

 

결정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음날 학교로 가는 아침이 밝았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데 상영이와 범식이를 만났다.

눈치를 보며 어색한 손을 흔드는 양훈이에게 둘은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상영이와 범식이도 어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 

둘 다 밤새 고열로 시달리다 결석을 했다는 것.

 

'우하하! 그렇다면 셋 모두 칡을 먹고 똑같이 열이 나서 다 결석을 했다는 것!'

 

셋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우린 어쩜 이렇게 아프는 것도 똑같냐며 호들갑을 떨어 댔다.

이것은  진정한 우리의 우정을 하늘이 인정해준거다며 범식이가 더욱 더 친하게 지내자며 '불끈 주먹 크로스' 를 선창하며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 들었다. 

 

나만 학교를 나왔으면 어쩔뻔했어?’

때로는 위기가 기회로 바뀔 수 있다

 

 머리를 순간 스치는 문구,

어린 양훈이는 오늘을 통해 그 문구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