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와 아름다운 동행

[아빠의 두번째 이야기] 내 친구 양식이의 비밀! 본문

딸을 위한 동화책 쓰기

[아빠의 두번째 이야기] 내 친구 양식이의 비밀!

생각이 날다 2023. 8. 10. 14:25

내 친구 양식이의 비밀!

철쭉 진 자리에 꽃잎이 떨어졌네. 누군가의 꽃이 되었네.

 오늘도 양식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반듯반듯한 교탁 위에 반듯하게 서 계시던 선생님이 빈 자리를 살피시며 학생들의 이름들을 크게 불러 대셨다.

 

 “문양식!”

 “양식이 오늘도 오지 않았네?”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셨다.

 ‘너는 뭔가 알고 있지?’라는 눈치였다.

집집마다 집전화뿐인 그 시절 선생님께서는 집에 전화기가 없었던 양식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시듯 양식의 사정을  묻곤 하셨다. 하지만 양훈이도 그 사정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저 난생처음 학교에 와서 이름 정도 알게 된 친구일 뿐이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교실에 있는 다른 모든 친구들 중에 양훈이가 양식이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여기신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 중 양식이와 가장 가까이 사는 친구가 바로 옆 마을에 사는 양훈이기 때문이다.

옆동네에 산다며 양식이에 대해 모른다고 하면 다들 뭐라 할지......

 

하지만 양훈이게도 다 사정은 있다.

양식이네 마을에서 양훈이 마을까지의 거리는 양훈이가 학교까지 가는 거리의 절반인 2km나 떨어져 있다. 말이 옆마을이지만 실상 옆마을이 아닌 셈.

 

양훈, 양식이 학교 나오면 잘해주고 잘 챙겨줬으면 좋겠구나.”

"네"

남생이처럼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너무 어려운 과제를 내어 주신 거 같아 어린 양훈이는 불편하다.

 

며칠이 더 지나고 나서야 양식이가 학교에 왔다.

선생님께 불려가 혼도 나고 전후 사정도 말씀드린 것 같다.

우리들에게는 별다른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아 양식이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양식이는 결석을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더 이상 양식이의 소식을 양훈이게서 찾지 않으셨다.

양식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충분히 알고 계신듯했다.

 

이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양훈이가  양식이가  몹시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몸이 안 좋은 걸까? 아니면 다른 큰 사정이 있는 걸까?’

마음속으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니 자꾸 양식이의 빈자리쪽으로 눈길이 갔다. 

오늘따라 양식이가 더욱 걱정이 되었다.

 

3일이나 지난 후에야 양식이가  학교에 왔다.

언제나 그렇듯 양식이는 시무룩하고 낯선 표정으로 말없이 책상에 앉아만 있다.

많이 아팠던 것일까 하며 살펴보지만 약간 검게 그을린 것 말고는 특별하게 아픈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어찌 보면 더 건강해진 얼굴이라 할 수 있었다.

 

양식아, 안녕. 양훈이야.”

안녕. 나는 양식이야.”

나는 양훈, 너는 양식 우리 다른 사람들이 보면 쌍둥이인 줄 알겠다. 그치?”

 

처음 인사를 건네는 양식이가 많이 어색해할까 봐 하는 농담에 양식이는 멋쩍어 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왜 결석을 했던 것일까?’

무뚝뚝하고 투박한 말투지만 나쁘지 않은 아이인 거 같다.

궁금했지만 당장은 묻지 않기로 했다.

 

양식이가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서인지 그 후로 계속 학교에 나왔다.

그리고 양훈이와 양식이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점심시간이었다.

운동장에서 '땅따먹기' 를 하다가 문득 양식이가 내게 말을 건넸다.

 

양훈, 나 왜 결석하는지 아니?”

 

무척 궁금하고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친한 친구지만 꾹꾹 참았던 그 말을 드디어 오늘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양훈아 아침에 너 걸어오지?”

당연하지. 나도 제법 체력이 좋아져서 잘 뛰어. 형들하고 뛰어도 좀 힘들긴 하지만 잘 따라가는 편이야.”

신이 나서 대답을 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는?”

그야 기다렸다가 버스 타고 오지.”

그렇지... 나는 버스를 타고 못 와.”

?”

“사실 우리 아빠는 약초를 캐시는 분인데 장날에만 나가서 약초를 파셔. 그걸로 차비를 주시곤 하시는데..."

 

"매번 장날마다 가시는 건 아니고 돈이 되는 영지나 산삼, 더덕을 많이 캤을 때나  둥글레랑 싸리버섯, 표고버섯이 많이 모였을 때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번  장에 가셔."

 

"물건을 팔기 전까진 집에 돈이 없을 때가 많아. 그럼 아빠는 차비를 안 주셔. 너희들이 버스 타고 가면 나 혼자 걸어가야 해. 혼자 걸어가면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다리 아프기도 해서 너무 힘들어. 그래서 차비가 없는 날에는 학교에 안 가고 마을 뒷동산에 오르다가 내려오곤 했어."

 

"그래? 선생님한테 이야기는 했어?"

 

"응, 혼났지. 그래도 선생님이 이해하시는 눈치더라. 다음에는 힘들어도 꼭 학교에 나오려고.."

 

아 양식이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집으로 돌아온 양훈이는 잠자리에 들때까지 곰곰이 양식이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머리에서 양식이의 말들이 자꾸 맴돌았다.

 

담양 골짜기에 있는 우리 학교는 하루에 4번 버스가 온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우리가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 동안 양식이는 그 흙먼지나는 꼬불꼬불 비포장도로를 한 걸음 한 걸음 천근만근 무거운 걸음을 내디뎠을 것이다. 발자국 하나 눈물자국 하나 찍으며 길을 가고 있을 양식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고 아팠다.

 

 양식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자꾸만 양훈이의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준비, 땅!” 소리에 맞춰 양훈이는 맨 앞으로 뛰쳐 갔다.

이렇게 처음 속도를 붙여가며 뛰다 보면 제법 견딜만 했다.

양식이를 위해 좋은 방법도 생각해 낸 양훈이는 얼른 양식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더욱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양식아 너 이제 결석하지 않아도 돼. 내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어.”

그게 뭔데?”

양식이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건 바로바로 내가! 같이 걸어가 주는 거야.”

네가?”

응 맞아.”

"그럴 수 있겠어?”

물론이지 우린 친구인데."

"우리 둘이 걸어가면 버스가 지나가며 친구들이 뭐라해도 부끄럽지도 않을 거구. 걸어가면서 노래도 부르고 오늘 배운 내용으로 공부도 하면서 꿩 먹고 알 먹고지’.”

 

네 마음은 고맙지만 매일 어떻게 걸어가 줄 수 있겠어?’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로 보는 양식이에게 큰 소리로 호언하며 덧붙였다.

 

난 아빠가 매일 50원씩 차비를 줘. 아침에는 뛰어오니까. 50원으로 학교 앞 매점에서 10짜리 독사탕(당시 흰색 돌사탕으로 절대 깨어지지 않을 단단한 사탕으로 당시에는 아이들이 그렇게 불렀다.)5개 사는거야."

"그래서 너는 2개 나는 3개를 나눠 갖는거야. 개당 먹는데 10분정도 걸리니까 2개를 먹다보면 너희 마을에 도착하게 되겠지? 너는 집에 힘들지 않게 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나머지 1개를 먹으며 우리 동네까지 가면 되지 뭐. 하하”"

 

양식이와 나는 정말 대단한 방법이라며 서로 하하히히 하며 신나게 웃어댔다.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 흔들며 양식이와 양훈이는 당당하게 걸어갔다.

봄에 피는 아지랑이를 보며 아지랑이 노래도 불러보고 학교종이 땡땡땡도 불러보고 산수에 약한 양식이에게 덧셈 뺄셈문제도 내면서 재미있게 시골길을 걸어갔다.

 

찔레꽃도 냉이 꽃도 눈에 담으며 집으로 향하는 하굣길을 양식이와 양훈이는 힘차게 걸어갔다.

 

양식이네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양훈이는 손을 흔들며 내일도 또 보자고 웃음을 보냈다.

양식이의 행복한 미소를 보며 양훈이는 정말로 잘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했다.

 

각자의 마을을 향해 가는 걸음 걸음 사이 사이 양식이와 양훈이는 한 번씩 뒤돌아 보며 손을 흔들었다.

힘찬 손짓에는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바람 없이도 펄럭였다.

 

다시 한번 뒤돌아보았을 때의 언덕에는 양식이가 보이지 않았다.

양훈이는 기대에 찬 손을 서둘러 접었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길의 한 가운데에 서서 양훈이는 서둘러 계산을 해야 했다.

집까지 가려면 아직 2km를 더 가야 한다.

이런 양훈이의 마음을 생각지 못하는 양식이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한 일이니 원망만 할 수는 없다.

 

그렇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양훈이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시골의 한적한 풍경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저 멀리 미루나무 두 그루만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둘러 오라는 듯 손을 흔든다.

모든 것들이 정지한 듯 고요하다.

양훈이는 애써 태연하게 주변을 살펴본다.

이제야 보이는 풍경들이 있다.

두 눈에 폭 들어오는 햐양 분홍 찔레꽃을 보며 양훈이는 장미꽃을 떠올린다.

밭의 가장자리에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 가시덤불 성을 만들고 있는 찔레꽃.

층층 비탈을 경계하는 곳곳마다 하늘 비취를 담은 밭두룩에 베로니카.

작고 아기자기한, 너무도 귀여운 별을 닮은 꽃마리,

비좁은 담 사이사이 피어나는 끈질긴 생명력의 분홍 제비꽃.

그 밖에 봄의 풍경이 되어주는 산벚꽃, 진달래.

 

정말이지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느새 눈물이 마른 양훈이는 두 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 돈 한 푼 없는 자신을 확인한다.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공짜로 만끽할 수 있는 시골 풍경이 양훈이는 꽤나 마음에 든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조그마한 밭떼기들의 곡선들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예쁜 밭에 돈부며 콩이며 수수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즐겁다.

 

그러다가 둥그런 무언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사연 없는 무덤 없다던데...

이 묏동의 사연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줄줄이 감자마냥 따라오는 그 옛날 들었던 귀신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등골이 오싹하다.

 !” 

자신도 모르게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는 양훈이를 발견한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양훈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준비, !”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