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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일곱 번째 이야기] 귀문(鬼門)의 집

생각이 날다 2023. 8. 27. 12:12

귀문(鬼門)의 집

 대덕면 용대리 767번지.

 북동쪽에 위치한 이 집은 예로부터 귀신이 드나드는 방위라 하여 불길하게 여겨졌다.

이 집을 지은 집주인은 배 한 척이라는 뜻을 가진 김일선(金一船).

그는 제주도 애월읍 사람으로 아버지가 어부였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에 걸맞게 어릴 적부터 그는 아버지 곁에서 고기잡이를 배우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일선씨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래도 큰아들이니 뭍에 나가 공부하여 큰 사람 되라며 그를 목포로 유학 보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선씨는 평생 같이 살 아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의 나이 이제 갓 25살 때였다. 그가 아내와 작은 출판사를 차리고 앞으로 펼쳐질 창창한 앞날을 꿈꾸며 새로운 시작에 설레했던 그때 갑작스런 비보(悲報)를 받게 된다. 고등어잡이 승선을 했던 아버지와 동생이 조업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내용.

 

그렇게 다시 들어가게 된 제주에서 그는 젊은 아내의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애월읍에서 살게 된다. 그러다 아내가 시집 온 지 34년째 되던 해에 그는 갑작스레 다시 뭍으로 갈 결심을 했다. 가업을 이어가던 그가 제주도의 생활을 접고 뭍으로 갈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또 다른 비보, 아내의 위암 판정 때문이었다. 평생을 곁에서 함께 해준 아내, 남편만을 바라보며 낯선 제주살이도 감내한 아내, 처갓집 한 번 맘 편히 가보지 못했던 그런 아내였기에 아내의 위암 말기 소식은 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자신에게 그렇게 헌신한 아내를 위해 뭣하나 제대로 해주지도 못하고 떠나보낼 수도 있다는 죄책감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선씨는 서둘러 뭍으로 나와 옥과를 향했다. 처갓집 근처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조상 대대로 선산과 전답을 지키며 살던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어 외지인을 경계하였고, 선뜻 집을 팔려는 사람도 없었다. 집을 구하러 마을 마을을 돌아다니던 그가 빈손으로 털레털레 돌아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촉박한 그는 아내를 위한 집을 짓고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마음에 그를 더욱 조급하게 했다. 하는 수 업시 그는 아내의 고향인 옥과에서 떨어진 먼 마을까지 살펴보기 시작했고 조금 멀지만 적당한 공기 좋은 산 아래 휴식공간을 찾았다.

 

대덕면 용대리 767번지. 그 터를 찾기까지 딱 보름이 걸렸다.

 

옛 집터였다는 그 곳은 지체 높은 양반이 살았을 법하게 아주 넓고 몇 백년은 된 듯한 아름드리 금강송 3그루가 큰 삼각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풀 한 포기 없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곳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서둘러 인부를 사고 제주도에서 살던 대로 제주도식 집을 지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는 바람을 막기 위해 형과 ㄱ자형의 집을 많이 짓는데 그는 ㄱ자형으로 크게 집 두 채를 지었다. 그리고 집안에 감나무 3그루를 심고 샘이 있는 뒤란에는 항상 밝은 기운을 뿜어주는 앵두나무, 석류나무, 분꽃을 심어 혼자서도 쓸쓸하지 않길 바랐다. 진흙과 돌을 섞어 담을 만드는 이곳 방식과는 달리 오로지 돌만으로 쌓아 올린 돌담을 지으며 고향을 떠올렸다. 출입문을 달아야 하지만 그는 돌담 사이 대문을 달지 않았다. 그는 이 또한 도적이 없고 거지가 없고 대문이 없는 제주도의 방식이라 하였다. 집이 하나하나 완성되는 동안 집 짓는 과정을 챙기면서도 병약한 아내를 위해 조그만 움막을 지어 극진히 아내를 간호했다.

 

그는 집 주변을 일궈 유채꽃도 가꾸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피어 있던 노란 유채꽃을 보며 너무나 좋아했던 그의 아내를 떠올리며 집 둘레 밭에다 유채꽃을 가득 채웠다. 제주도에서 구해온 귤나무도 3그루 가져와 정성스레 심었지만 산골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귤나무들은 이듬해 모두 얼어 죽어버렸다.

 

이렇게 큰 대궐 같은 집을 그는 1년만에 뚝딱 완성시켰다. 이 대궐 같은 집에서 그는 아내와 자연을 벗삼아 남은 시간 행복하게 살 요량이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그의 집을 구경하며 부러운 소리 하나씩을 늘어놓았다. 그 역시 아내와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꿈꾸었다.

 

아내는 그의 마음을 쏟은 집에서 그 이듬해 봄까지 지냈다. 아내는 일선씨가 집을 하나하나 지어가는 그 모습을 아스라이 바라보다 꽃상여를 타고 집을 떠나 뒷산 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묻혔다.

 

일선씨도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 아내와 함께할 시간이 길지 않을 것임을.

그럼에도 아내의 빈자리는 컸다.

 

해마다 다시 찾아오는 봄은 그에게 너무도 잔혹하게 다가왔다.

다시 씨를 뿌리지 않아도 집 밖을 노랗게 수놓는 유채꽃.

매년 봄을 잊지 않고 앵두나무, 석류나무, 분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낼수록 아내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해 주었다. 평생 죄책감을 안고 가던 일선씨는 끝내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역시 그렇게 집을 떠나 그녀의 곁에 묻혔다.

 

마을 사람들은 이 집에 액운이 끼었다며 그 집을 피하기 시작했다.

근처의 논밭을 오갈 때에도 그 집을 피해 다녔다. 해가 빨리 지는 산골이라 어스름한 저녁에도, 어둑한 밤에도 일하기가 일쑤인데도 근처  논과 밭이 있는 마을 사람들만은 해가 짐과 동시에 일도 멈추었다.

 

옛날부터 이 집터가 귀문이라는 풍문이 있었다.

그런데 줄초상이 나고 나서부터 마을사람들은 이 집터가 '귀문'이라는 풍문을 굳게 믿기 시작했다.

 

양훈이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마을에 들어온 때는 그해 겨울 1224일이었다.